오피스 속 작은 정원

22 Ju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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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스탬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양혜원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김우진 디자이너와 함께 스탬프 원예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해요. 안녕하세요 우진씨!

우진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부터 식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디자인실 소속 김우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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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저희 회사에는 다양한 식물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처음 회사에서 식물을 기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진     생일날 친구에게 피쉬본 선인장을 선물받았어요. 당시 살던 집의 환경이 식물에게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 회사에 뒀는데 참 잘 자라더라고요. 식집사인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었더니 프리지어 구근을 심었다며 키워보라고 나눠줬어요. 식물을 기르고 싶던 마음은 늘 있었지만 시작은 얼떨결이었던 것 같아요.
혜원     저는 옛날부터 식물을 좋아해서 집에 여러 반려 식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요. 처음 스탬프에 입사했을 때 회의실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식물을 보았어요. 혼자 있던 식물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 머무르는 회사에 내 맘 기댈 곳 하나 더 생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하나둘씩 데려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조금씩 식물을 데려오니 우진씨가 이 식물의 이름은 뭐냐며 관심을 보였던 게 생각나네요. 그때부터 우진씨와 식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죠. 그 화분의 정체가 프리지어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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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집이 아닌 회사에서 식물을 길렀을 때 어떤 점이 좋았나요?

우진     업무 중에 생각 정리를 하거나 잠시 숨을 돌리고 싶을 때 테라스에 나가서 식물을 보는 게 큰 위안이 됐어요. 모니터 앞을 잠시 벗어나 테라스로 나가면 맑은 하늘도 있고 상쾌한 공기도 있고 그간 눈치채지 못했던 새순을 발견하면 정말 기뻐요. 가끔 출근이 힘든 날에도 회사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힘내서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의 테라스 환경이 집 보다 식물들에게 더 좋아서 맘 편하게 기를 수 있었어요.
혜원     맞아요. 그 점은 정말 공감해요. 저희끼리 회사 오피스를 식물 요양원이라고 부르잖아요. 식물에게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바람과 햇빛인데 테라스에서는 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충족되어서 식물을 키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그리고 원예부 부원들과 함께 식생활을 하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배로 되는 거 같아요. 누군가의 화분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날 때나 번식한 개체를 나눌 때, 동료가 자리를 비운 날이면 동료의 몫까지 돌보아 주는 등 모든 순간을 함께 하니 마치 공동육아로 자식을 길러내는 기분이 들고 업무 외적으로도 동료와 끈끈해 지는 감정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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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사에서 기르기 좋은 식물을 추천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우진     저는 적응력이 뛰어난 나비란과 미리오클라두스를 추천하고 싶어요. 혜원씨에게 자구를 받아서 물꽂이부터 시작한 나비란은 성장하는 속도가 엄청나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이 정도면 나비란으로 세상이 뒤덮여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미리오클라두스는 잎을 살살 만지고 있으면 보드랍고요, 새순이 연두색으로 쑥쑥 자라는데 참 예쁩니다. 강력 추천해요. 혜원씨는 어떤 걸 추천하고 싶어요?
혜원     음, 각 회사마다 환경이 다르니 식물의 특성을 고려하며 골라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필레아 페페를 추천하고 싶어요. 동글동글 귀여운 생김새를 하고 있는 필레아 페페는 다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많은 자구를 내어줘서 번식하기도 쉽고 반 양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오피스에서 기르기 좋은 식물이라 생각해요. 최근 저의 필레아 페페에도 새로운 자구가 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바라보게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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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사에서 식물을 기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어떤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우진     저희 손을 떠난 많은 식물들이 생각나요. 필레아 페페, 황칠나무, 라일락 등...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식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가만히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식물들을 인간의 욕심으로 돌봐주었죠. 결과적으로 그런 행동들은 식물을 괴롭히던 것이었고요. 한날은 친구에게 받은 아기 필레아 페페가 시들해 보여서 물꽂이도 해보고 흙에도 심어봤는데 그게 아기 필레아 페페에겐 독이 되었어요. 결국 그 페페는 죽고 말았죠...
혜원     그때 우진씨가 나무젓가락에 페페를 고정하며 정성을 다해 돌보았는데 페페가 점점 시들해지더니 결국 죽어서 눈물을 보였잖아요. 옆에서 바라보던 저도 슬펐지만 눈물까지 흘리시길래 식물에 진심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즐거웠던 일은 없나요?
우진     물론 많죠! 음, 수박 페페의 번식을 성공했던 게 가장 기뻤어요. 혜원씨의 수박 페페 잎 하나를 받아서 심었는데 무럭무럭 자라나 벌써 두 개의 화분으로 늘어났어요.
혜원     맞아요! 수박 페페 번식에 성공했었죠. 우진씨가 심었던 수박 페페에 작은 잎이 나왔을 때 저희 소리 지르면서 기뻐했잖아요. 몇 달을 기다린 끝에 만난 새싹이라 더 반가웠던 것 같아요. 저는 플라스틱 통에 심었던 고수가 생각이 나는데요. 물 주기를 놓쳐서 주말을 보내고 오니 고수가 다 시들어있었어요. 아쉬워하며 화분을 정리하고 테라스 한편에 놔뒀는데 다른 원예부 팀원이 그 흙을 썼는지 다른 화분에서 고수가 하나둘씩 계속 자랐던 게 생각나네요. 잊을만하면 자꾸 나타나던 게 고수의 영혼이 테라스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남아있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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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식물을 기르면서 그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우진     어느 곳에 가도 식물이 있으면 눈여겨보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식물들을 좋아하는구나 취향에 대해 더 잘 알게되고 식물이 있는 공간을 눈여겨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인테리어에 대한 시야도 확장되었어요. 예전에는 미드 센추리 같은 모던한 느낌이 좋았다면 지금은 우드 느낌의 인테리어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또 자연적인 것과 환경적인 요소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혜원     맞아요.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적인 것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최근 알맹상점에서 열린 공덕동 식물 유치원 졸업식 팝업 행사에 함께 갔잖아요. 재개발 단지에 버려진 화분이나 그릇, 식물을 구조해서 돌보고 입양시키는 활동을 하던 단체였는데 식물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이런 멋진 활동도 알지 못했을 거예요. 언젠가 나도 이런 활동을 해볼 수도 있는 거고... 좋은 흐름인 것 같아요.
우진     그리고 저는 식물과 함께 지내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배우고 있어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잖아요. 식물과 호흡을 맞추며 거리 두는 연습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도 되고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혜원     좋은 말이네요. 저도 우진씨의 말을 들으니 식물을 대할 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식생활을 하며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깨달았어요. 감정이 예민해지고 평정심을 잃을 때면 식물들 곁으로 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들여다보며 매만지곤 해요. 그 짧은 시간이 스스로의 내면을 살펴보고 일렁이는 마음을 잠재우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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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진씨는 식집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이루고 싶은 것 있나요?

우진     회사에서 큰 식물을 길러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안 해 본 도전이기도 하고 벌레도 걱정되지만 혼자서 하는 것보다 원예부 부원들과 함께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식물을 기르면서 받았던 좋은 영향들을 원예부가 아닌 다른 동료들도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혜원     와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지금은 다 작은 아이들이니까 존재감 큰 식물이 하나쯤 있으면 분위기가 또 달라 보일 것 같아요. 생각한 종류는 있어요?
우진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몬스테라가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오피스 안에서 어디에 놔둘지 생각해 보고 다른 동료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혜원씨는 앞으로의 목표 있나요?
혜원     저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정원을 가지고 싶어요. 그곳에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꽃들도 심고 나무 밑에 그늘이 생기면 그 아래 가만히 누워 온전한 쉼을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놀러 올지도 모를 길고양이들을 위해 밥그릇과 물을 놔두고 싶어요. 또 작은 욕심으로는 식물을 씨앗에서부터 잘 길러보고 싶어요. 고수, 루꼴라, 방울토마토...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을 실패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성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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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 질문이에요. 오늘 저와 원예부 활동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땠나요?

우진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에 찍었던 사진도 한 번씩 다 훑어보고 어떤 식물은 없어지고 어떤 식물은 무럭무럭 잘 자랐고, 식물을 기르기 전과 기른 후의 달라진 제 모습도 생각해 보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어요. 혜원씨는 어땠어요?
혜원     저도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처음에는 두 개의 화분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열 개 이상의 많은 화분이 모였고 그 사이에 아팠다가 건강해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고,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테라스에 나가서 식물을 보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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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won Yang

Graphic Designer